피가 마르는 기분
얼마 남지 않은 돈 이제 실패하면 ,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벼야 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지 미치지 않고는 되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실력을 닦던가, 아니면 정말 실력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던가, 아니면 그만두는것뿐이었습니다.
1. 실력을 닦던가, 실력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던가, 그만두는가
1000p를 찍고 오르는 듯하던 주식은 다시 하락하여 선물의 직접 투자한 결과는 너무나 큰 손실을 보고서
결국 청산하였습니다.
원금 4억 5천만 원 이 처음이익이 1억 8천만 원까지 갔고 마지막에는 1억을 건졌다가 다시 투자 완전히 0원,
깡통으로 손을 떼었습니다.
8년 전이니 지금 돈으로 12억은 넘을 것 같았습니다.
원래 제 성격이 끝을 보는 성격이라 손절매 없이 그냥 두었던 것이 너무나 참담한 결과를 보았습니다.
다시 도전하려다 마누라 보기도 창피하고 직장까지 그만두라고 큰소리친 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다 집을 떠나기로 , 정치적 이유는 아니지만 외유를 택했습니다.
2000년 3월경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동기생을 찾아가서 6개월 정도 소일했습니다. 가끔 멕시코 티화나로놀러 가기도 하며(샌디에이고에서 30분 거리) 잠적생활을 계속했습니다.
샌디에이고는 LA시내에서 차로 2시간 30분 거리인데 가는 길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미국은 마일을 사용하고 대개 80마일이 제한속도인데 어떤 때는 120마일(192킬로) 속도로 달려 도 앞뒤로 차 한 대 없는 경우도 있어 달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확 뚫리는듯한 기분도 느끼며 구름은 낮게뜨고 파란 하늘 흰구름, 왼쪽에는 아름다운 꽃과 예쁜 집들 오른쪽엔 파란 바다, 제가 3년을 캘리포니아에서 살아봤는데 LA에서 샌디에이고를 달리다 보면 이곳이 천국인가 하는 생각을 몇 번이고 해 보았습니다.
이곳저곳 미국기차여행도 하고 코리안 타운에서 친구들과 술도 마시며 그렇게 억지로 시름을 잊고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와중에 저와 가까운 미국인친구(1부에서 내게 주식정보를 준친구)도 만났는데 자기가 코치를 해줄 테니 다시 도전해 보라고 하며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승진하여 월가 모금융기관 아시아담당책임자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간간이 인터넷을 조회하니 선물지수는 점점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매도를 했으면 30억이 아니라 50억 도 이익이 더 났을 것이었는데 지금이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마누라 보기 부끄러워 정말 용기가 안 났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돈 이제 실패하면 ,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벼야 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론은 2가지였 씁니다.
내가 실력을 닦던가, 아니면 정말 실력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던가, 아니면 그만두는 것뿐이었습니다.
2. 옛날의 그 긴장한 생각도 나고 지금도 그때의 피 마르는 기분
법과후배 중 아주 잘 나가는 사람이 한 명있었씁니다. 책도쓰고 서울에서는 주식판에서는 3 손가 락안에 꼽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체적 흐름(우리 종지향후전망)은 미국인 친구의 도움을 받고 실질적 주문은 후배에게 파격적 조건으로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실력을 닦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공존하자 이것이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처음 선물을 하여 돈을 딴것도 후배(장차장밑에 있던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이긴 것이고 2번째 투자에서 무모하게 패배한 것은 모두 나의 어리석은 판단의 바른 판단이라고 생각하며 총알을 준비했습니다.
내게 남은 돈 5억과 마누라에게 전에 준 돈(7년짜리 조흥은행 5억 통장)을 해약하라니 자신 있냐 고 하더군요, 한번 더 믿어보라고 하니 두말 않고 주더군요, 고마웠습니다.
2000년 10월 말 경쯤 되었는데 미국인 친구가 긍정적으로 우리 시장을 보고 있고 실무담당하는 후배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후배는 20%씩 나누 더 매수하자고 했으나 제가 주장하여 50%씩 2일간 나누어 매수했습니다.
단 매도 시에는 후배가 나와 상의 없이 결정하기로 합의 보았습니다. 당시선물지수는 65-68을 왔다 갔다했씁니다. 많이도 내렸구나 생각하니 정말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전체 12억을 입금하고 10억 원어치 매수키로 하고 첫날 100 계약 다음날 100 계약, 모두 200 계약을 매수했습니다.
제가 원래 막무가내이고 좀 간이 큰 편입니다.
만일 잘못되면 생각도 안 했고 후배에게 이익이 남으면 공유하고 손해 봐도 부담안주기로 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주문했습니다.
200 계약 평균주문가 65.50 다음날부터 주가는 조금씩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했지만 절대로 청산 않기로 했습니다.
오직 추세가 꺾이기 전에는 샀다 팔았다 말기로 나도 주장했고 그 후배도 저와 같은 스타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주가는 연일 올랐고 매수 20일 만에 우리는 선지 76에 200 계약을 모두매도 했습니다 나는 더두자고 했으나 1차 이익을 정산하자고 후배가 간곡히 설득하여 그리했습니다.
76-65.5=10.5 피가 말랐지만 결과는 물경 10억 5천만 원의 이익을 보았습니다.
너무 좋으니 산과 나무가 움직이는 것 같고 그 기분은 이루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매 각한 다음날 선지는 좀 내렸고 주가는 전반적으로 상승을 가고 있었습니다.
미국인 친구가 판단을 정확히 해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자신이 가득하였자만 매수규모를 50% 줄이기로 했고 2번째 승부일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정말 생명을 건 도박 같은 생각에 일단 매수규모를 줄여보기로 했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며 글을 쓰니 옛날의 그 긴장한 생각도 나고 지금도 그때의 피 마르는 기분에 식은땀이다 납니다.
주가가 내릴 때는 잊어버리려고 후배와 함께 목욕탕도 가고 낮술도 마시고 산에도 가고 했지 만 다소용 없었습니다. 목욕탕이고 산이고 술집이고 어디에 있던 20분마다 체크하며 후배와 난 거의 미친 사람 같이 살았습니다.
무엇이든지 미치지 않고는 되는 법이 없지요 제가 보기에는 깜짝 놀랄만한 지식을 가진 그런 분이 정말 계십니다.
언젠가 빛을 보겠죠.
다른 얘기 좀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작가 중 쌍벽을 이루는 대가가 최인호 씨와 한수산 씨입니다.
남자들은 최인호 씨를, 여자들은 한수산 씨를 좋아했습니다.
한수산 씨의 글 읽어 보셨는지요. 옛날 작품 중 아프리카여 안녕, 많은 여성들의 심금을 울렸지요 최인호 씨의 별들의 고향처럼 인기 있던 글입니다.
전통시절 얘기입니다.
한수산 씨가 언젠가 글을 썼는데 대충 이런 얘깁니다.
벙거지를 쓴 대머리가 탄광에 나타났다. 광부들은 아우성이었다. 이것도 요구하고 저것도 요구하고 그때마다 벙거지는 알았다고 하며 다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벙거지는 돌아서며 독백했다, 병신 같은 새끼들.
누구 얘기하는지 알겠죠, 서슬이 퍼런 그 시절. 한수산은 공항에서 서빙고로 바로 잡혀갔습니다.
가는 차량 속에서 얼마나 맞았는지 수사관 2명이 구두로 짓이겼는데 도착했을 때는 피투성이가 되어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고문을 받고 다음날 각서 쓰고 나왔고 바로 그는 일본으로 갔습니다.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겠다며 떠났다고 합니다. 이것이 전통시절 발생한 한수산 필화사건 입니 다.
이제는 말해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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