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 실패하여 벌어진 안타까운 사연들
내성적인 분인데 순간적으로 칼로 부인을 찔렀고 병원에 실려간 부인은 나중에 사망했습니다. 존속살해가 되어 구속되어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그런 불쾌한 상태로 몇 날 며칠을 끝도 없이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곳으로 계속하여 떨어졌다
1.1996년경의 얘기이고 실화입니다.
당시제가 부산의 동래구안락동의 모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저와 같은동에 함께 살던 분의 얘기입니다. 그분은 공무원으로 30년 정도근무 후 퇴직한 분이었고
주식투자를 하였습니다. 당시 50평대 아파트를 2채나 갖고 있었고 현금도 갖고 있어 매우 여유로운 분이었습니다.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이 이익을 보고 조금 투자했던 금액이 점점 늘어났던 것입니다.
거의매일 아침 산책시간에 만나면 공직 선배분이라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어떤 주식을 사서 재미 봤다는 등의 그런 얘기였습니다.
주식하는 분 모두가 원래 딴 얘기해도 잃은 얘기 잘 안 하니 늘 번이야기로 자랑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몇 달 정도 그분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제부인으로 부터 그 사람얘기를 들었습니다.
얘기인즉 그분이 주식에 실패하여 점점 투자금액이 늘어나 가진 집 2채를 모두 날리고 같은 아파트에
전세로 살게 되었는데 그분의 부인이 잘 알지도 못하며 무모하게 투자하여 이 모양 이 꼴이라며
바가지를 자주 글은 모양입니다. 장성한 자식도 2명이나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간밤의 술이 덜 깬 상태로 열받아 아침부터 해장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다시 부인이 바가지를 걸어서.
내성적인 분인데 순간적으로 칼로 부인을 찔렀고 병원에 실려간 부인은 나중에 사망했습니다.
존속살해가 되어 구속되어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어머니를 살해한 아버지가 미워 자식들도 면회를 가지 않았고 그렇게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일들이지요.
2. 제가 미국 LA에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얘기입니다.
제가 근무하던 건물의 경비원(당시 55세 정도)으로 있던 분의 얘기인데. 아마 2002년경으로 기억합니다.
정 씨라고 이분은 원래 영등포역 앞에서 감자탕집을 하고 있었는데 덩치도 크고 좀 난폭하며
영등포에선 제법 알려진 건달이었습니다.
부인이 감자탕집을 운영하여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었고 20년 가까이 식당을 경영하다 보니
돈도 좀 있었습니다. 아마 당시 5억 이상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돈도 있고 주먹도 쓰고 하니 동생들도 많이 따랐고 영등포에선 제법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영등포의 000 하면 알정도였던 모양입니다.
당시 그의 처남이 증권사에 근무하여 그가 처음에는 주식에 손을 시작했고 나중에는
선물과 옵션으로 전재산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과정은 잘 모르겠으나 주식도 몰빵, 선물도 옵션도 잘 모르며 저처럼 무모하게 투자했던 모양입니다.
감자탕집 마저 처분할 정도로 전재산을 날렸습니다. 처가가 당시 LA에 있어 서울에서는 더 있기도 창피하여
미국으로 이민을 하였습니다.
미국으로 온 이후에 부부싸움은 계속되었습니다. 남자는 네 동생 때문에 거지되었다 하고,
여자는 또 바가지를 끌어 그분은 자주 여자를 폭행하였습니다.
미국사회는 여자를 철저히 보호하는데 911(우리의 112)에 신고하면 즉각 옵니다.
처음 부부 싸움으로 여자를 때리면 1달간 자신의 주택접근 금지명령이 내려집니다.
두 번째 다시 폭행하거나 접근금지 기간에 집에 들어오게 되면 구속됩니다.
결국 정 씨는 구속되고 이혼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계속하여 술 먹고 이혼한 부인을 찾아가 폭언과 폭행을 수차례 행함으로 그때마다 구속되었습니다.
여자는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를 하며 돈을 잘 벌었으나(월 3000-4000달러) 미국사회가
여자보다 남자는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겨우 교육을 받고 경비원으로 근무를 하였으나 술만 먹으면 이혼한 부인에게 찾아가 행패를 부리곤 하였습니다.
물론 그때마다 잡혀가 형을 살고 그런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경비원으로 근무 중에 술을 잔뜩 먹고 취한 상태에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았습니다.
미국은 경비원들은 실탄과 총기를 소지합니다.
만취한 상태에서 귀 윗부분을 쏘았는데 정통으로 맞지 않고 빗나갔습니다.
식물인간으로 35일을 있다 깨어났습니다.
저와 가까운 사이라 총알이 뚫고 지나간 머리구멍도 제가 만져 보았습니다.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그 35일간의 식물인간 상태에 기억나는 얘기 없냐고 물었습니다.
죽었을 때 이야기를 호기심에 물었습니다.
그가 얘기했습니다.
머리를 배에 붙이고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아기가 엄마뱃속에 있는 자세로 끝없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꿈을 꾸면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그런 불쾌한 상태로 몇 날 며칠을 끝도 없이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곳으로 계속하여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를 수없이 외쳤다고 합니다.
그러다 그는 깨어났고 다시 살았습니다.
지금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고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러지 마십시오.
부끄러운 것 인생이 그런 겁니다. 대통령까지 하다 구속된 전통 노통 생각하면 우리의 부끄러움 아무것도 아닙니다.
견뎌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때를 기다리시면 기회는 옵니다.
3. 아파트 이웃에 살던 분의 얘깁니다.
그분은 서울대졸업하고 증권회사에 펀드매니저로 근무했던 분입니다.
부장까지 있다 퇴직하여 전업투자자로 있었습니다.
수학을 전공한 분으로 하여간 펀드매니저시절 날렸습니다.
퇴직금과 기타 등등 5억 정도 규모로 주식(90%)과 파생을 전문적으로 투자했습니다.
퇴직 후 제법 수익을 올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2003년 정도로 기억합니다.
옵션에서 100만 원 극외가 투자하여 100배의 수익도 본적 있습니다.
나중에 투자규모가 점점 늘어났는데 10억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주로 제약주에 거의 몰빵하고 있었는데 2004년경 완전히 손을 들었습니다.
10억 중 그분의 돈 5억 빛이 5억 정도 있었는데 그 10억이 3억 남았고 빚도 못 갚을 형편이 되었습니다.
자살한다고 집을 나가고 사네가 죽는다고 하는 얘기가 들렸습니다.
가끔 만나 얘기하던 사인데 죽는 길 외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친척들로부터 돈을 빌렸는데 부채 상환독촉을 받고 빚 갚을 정도도 안되고 정말 길도 없고 서울대까지
나온 사람으로 자존심, 비참함 그런 것이 견딜 수 없었던 거지요.
그런데 그 부인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부인 이 보통은 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부인은 일부 급한돈만 갚고 3억의 그제약주를 그대로 갖고 갔습니다.
부인이 교사였는데 자신의 봉급으로 이자를 주고 피나는 세월을 살았습니다.
만 3년을 갖고 있다 작년 5월인가 모두 팔았습니다.
전 그렇게 독한 사람 첨 봤습니다.
남은 3억을 아마 10억 정도에 판 것으로 압니다.
저의 부인과 직장동료입니다.
저는 그때부터 생각했습니다.
명문대 출신의 펀드매니저 보다 무식한 독종이 오히려 이기는 곳이 주식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감하십니까?
옵션도 마찬가집니다. 고수
전 별로 안 믿습니다.
이 글은 제가 한동안 전업투자자의 길을 걸었을 때 이 글을 읽고 위안과 희망을 받았던 글입니다. 남들과 소통할 수 없는 외로움과 불안 희열이 교차될 때 한 번씩 읽으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은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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