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행복한 꿈을 꾸는 시간을 가지세요
누가 돈을 벌고 있다 누가 망했다 하는 얘기는 금방 퍼져나가기 마련입니다
어느 날 경리여직원이 참여 시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2달 만에 이익을 제법 좀 보았습니다
당시 1 달봉급으로 투자한 직원은 10배 정도의 수익을 보았습니다.
가족과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나는 행복한 시간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게시판을 보면 온통 어두운 이야기뿐입니다.
때론 도움 되는 이야기도 많지만 온통 슬픈 이야기 더욱 가슴 아픈 이야기
더욱 답답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고 상승이다 하락이 다하며 점점 불안해하는 개미들의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메이저는 미로의 유리집을 만들어 개미들이 그 미로를 우왕좌왕하며 방황하게 하고 개미들은 간신히 그 미로를 헤매며 탈출구를 찾아가고 있지만 미로의 CCTV카메라를 통하여 어쩔 줄 모르며 방황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오늘은 마음 편하고 신나는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어쨌든 그 여권사의 예언 이후 제인생의 역전이 일어나 삶이 달라졌습니다. 물론 당시는 그 사람의 예언이 맞는구나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손대는 것마다 몇 배의 이익이 일어나는 일들들이 여러 해 일어났습니다. 누가 돈을 벌고 있다 누가 망했다 하는 얘기는 금방 퍼져나가기 마련입니다.
어느 날 마누라가 먼 친척 한 사람이 내구좌에 돈을 1억 원을 입금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투자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어느 날 제사무실에 저의 아파트 경비원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평소 눈인사정도 하며 잘 모르는 사인데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황했는데 알고보니 운전기사로부터 회사주소를 알았고 우리 아파트라인에 운전사 있는 집이 몇 세대였는데 그중 잘 나가는 것 같고 해서 자신이 집판돈이 1억 5천만 원 있는데 투자처를 찾아달라는 것이었고 저는 정중히 거절 용돈까지 주어 보냈습니다. 또 동서 한 사람이 공직에서 퇴직했는데 퇴직금(3억 정도)으로 투자를 해달라고 부탁이 들어 온시절입니다. 친동서라 아마 당시 2억 정도 돈을 불려준 것으로 기억납니다.
돈냄새는 온통 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제사무실이 강남구역삼동이었는데 당시 우리가 5층을 사용하고 1층에 은행이 있었는데
갑자기 지점장 몇 사람이 찾아와 자금유치를 부탁하였고
또 어느 날 경리여직원이 면담을 신청하였는데 내용인즉 자기들도 회사투자 시 조금 참여
시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큰 금액은 안 되고 전 직원(15명 정도)에게 1달 봉급만큼만 다음투자한 IT종목에 투자하였고 2달 만에 이익을 제법 좀 보았습니다.
한여 직원이 당시 형편이 어려워 투자를 안 했는데 경리직원이 그만큼 더투자를 했고 큰 이익이 나자 두 사람이 싸움이 붙기도 했습니다. 당시 1 달봉급으로 투자한 직원은 10배 정도의 수익을 보았습니다.
고교동창회 총무가 찾아와 기념행사에 찬조하라 했습니다.
당시 10만 원 정도씩 기부금을 내는데 500만 원을 찬조했더니 어느 날동창회장이 전화가 왔는데 (상장사대표) 내년회 고교동창회 부회장을 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부터 3년을 고교동창회 부회장으로 있었습니다. 주식격언 중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항에 먹이를 뿌리면 붕어가 계속 먹이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는 형국이 지속된 것입니다.
여름방학과 겨울 방학시즌에 마누라와 두 차례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처럼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처음엔 미국동부를 시작하여 서부로 여행을 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캐나다 쪽과 미국 쪽의 나이아가라
비경을 보고 배를 타고 우의를 입고 폭포가까이 가는 일은 너무나 환상이었습니다.
아침 6시 일찍 일어나 폭포의 가장 가까운 염소섬을 산책한 일은 평생을 잊을 수없었씁니다.
그 신선한 공기와 폭포수소리 맑은 공기는 온통찌든 내 영혼을 깨끗이 씻어주는 듯하였습니다. 그 염소섬의 추억은 너무나 신선하게 저의 폐부 깊숙이 스며들어왔습니다.
지구의 모든 산소가 여기서 발생하는듯한 막강한 오존층의 신선함
정말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가고 싶을 정도입니다.
또 우리는 기차여행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10년을 넘게살 아도 기차 한번 안 탄사람이 많을 정도로 기차여행은 잘 안 합니다.우리보다 넓고 중간중간 유리로 된 전망칸도 있어 시간 여유 있는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고 대부분 아름다운 코스로 기찻길을 놓아 아주환상입니다.
푸근하고 여유로운 자연과의 만남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또다시 어느 바닷가의 마을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밤 10시경 주변의 조그만 카페를 찾았습니다.
미국이지만 시골스러운 그런 마을 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마을이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동네였습니다.
우린 간단한 안주와 맥주 몇 병을 마셨습니다.(맥주 작은것1병2달러)
우리끼리 얘기하는데 미국인이 자꾸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다 맥주를 마시기 원하냐 하고 몸짓을 하자 그렇다 해서
한 병 사주 었더니 옆의 놈도 사달라 하고 해서 그날 3 사람에게 맥주 2병씩 사주었습니다.
어디서왔냐길래 코리아 라하니 그날 그 술집에 코리아를 위하여 하며 좀 시끄러웠습니다.
예쁜 바텐더도 자기도 한잔 사달라 하여 테킬라를 한잔 사주었고 우리는 새벽 2시까지
그곳에서 즐겼습니다
전부 마신돈은 60 불정 돌였습니다.
전체손님 10 명정도고 가운데 당구다이가 있고 돈이 없어 술은 못 마시는 가난한 노동자의
미국 마을에서 한국사람이 우쭐했던 밤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유럽을 여행했습니다.
영국을 시작 유로열차를 타고 프랑스로 다시 비행기로 이태리로 다시 버스로 스위스로
여행을 했습니다. 아마도 가신분이 많아 일반적 그림은 생략합니다. 이태리를 집중공략했습니다.
이태리사람의 인생관을 3마디로 하면 사랑하자, 먹자, 여행하자 이것입니다.
저 사람들은 여행을 위해 일 년 번돈 다습니다. 그리고 일 년 내내 여행계획을 세웁니다.
또 얼마나 사랑에 관심이 많은고 하니 식당에 60넘은 웨이트리스도 귀걸이 하고 틈날 때마다
거울을 보고 온통 애인생각 데이트생각에 관심이 가득합니다.
지구 최후의 날 폼페이를 갔습니다.
화산이 폭발하였는데 용암분출이 아니라 화산재가 덮여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죽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두려움에 죽은 소녀 관복을 입고 죽은 관리들 손톱까지 그대로 보관돼있었습니다.
폼페이의 가장부잣집을 갔습니다.
사우나가 있었고 특이한 것은 손님을 위해 뱀탕을 고으는 큰 솟과 손님방이 있었습니다.
여자들도 거느리고 음란한 그림도 벽화가 그대로 있고 손님이 오면 여자들을 뱀탕먹이며
접대했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번성과 폼페이의 멸망
변동성이 많은 한 주가 시작됩니다.
콜도 풋도 가능성이 많은 한 주 고 정말 앞으로의 장세를 가늠하는 한 주가 될 것 같군요.
미로를 헤매는 우리를 바라보며 즐기는 저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항상 좋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입니다.
가족과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나는 행복한 꿈을 꾸는 시간을 가지세요.
운명의 날은 다시 찾아옵니다.
이 글은 제가 한동안 전업투자자의 길을 걸었을 때 이 글을 읽고 위안과 희망을 받았던
글입니다. 남들과 소통할 수 없는 외로움과 불안 희열이 교차될 때 한 번씩 읽으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은 소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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